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889년에 셰필드 유나이티드 크리켓 팀의 회장이던 찰스 클레그 경에 의해 창단했다. 초대 감독 JB 월스틴홀름의 지휘 아래 1892년에 풋볼 리그에 참가하여 2부 리그에서 뛰다가 한 시즌만에 1부 리그로 승격, 1898년에 풋볼 리그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, 이듬해에는 [[FA컵]]에 처음으로 우승했다. 월스틴홀름 감독에 이어 1899년에 취임한 존 니콜슨 감독 시절에도 전성기는 계속되었고, 그가 재임하던 33년 동안 팀은 FA컵 3회 우승(1902, 15, 25)을 이루어냈다. 그러나 니콜슨 감독이 물라난 직후 팀은 점차 기울기 시작하여 1933/34 시즌에 강등당한 이후 1~2부를 오가는 요요클럽 신세가 되었고, 1979년에는 3부 리그, 1981년에는 4부 리그까지 떨어졌다. 그러나 1988년에 [[왓포드 FC]]에서 온 데이브 바셋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1989년에는 2부 리그로 복귀, 1990년에는 1부 리그로 다시 승격한 뒤 1992년에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하자 원년 멤버가 되었으나, 1993/94 시즌에 리즈로 이적한 에이스 브라이언 딘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득점력 부족에 고전하다가 첼시와의 최종전에서 경기 종료직전 통한의 2-3 역전패로 20위(당시 22개팀)로 강등당한 뒤 2부 리그에서 쭉 머물렀다. 1999년에는 승격전도사로 유명한 [[닐 워녹]] 감독이 부임하여 리빌딩을 시작하였고, 2002/03년에는 2부 리그 소속으로 [[풋볼 리그 컵]]과 FA컵에서 준결승에 동시 진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고, 2006년에는 마침내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하게 되지만, 기쁨도 잠시 단 한 시즌만에 강등을 당하였다. 물론 시즌 내내 강등권이 아니었던 기간이 더 많았으나, 시즌 막판 강등권에 있던 웨스트햄이 미친듯이 잔류로이드를 시전하면서 최종전 전까지는 16위였으나 최종전에서 18위 [[위건 애슬레틱 FC|위건]]에 홈에서 1:2 패배를 당했고, 강등권 경쟁자였던 17위였던 [[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|웨스트햄]]이 [[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|맨유]] 원정에서 승리하면서 17위 위건에 딱 골득실 1 차이로 밀리고 결국 최종 순위 18위로 [[강등]]되고 말았다. 이 당시 웨스트햄의 질주는 소유권 논란이 있던 [[카를로스 테베스]]의 맹활약에 기인했던 것이었고, 셰필드는 이에 웨스트햄에게 소송을 걸어 소정의 보상금을 얻어내지만, 당연히 큰 위안은 되지 못했다. 주장 [[필 자기엘카]]가 수비의 핵심으로서 중요한 골도 넣어주고 때로는 골키퍼도 보는 등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줬지만, 정작 마지막 날 위건과의 [[단두대 매치]]에서 핸드볼 파울을 범하며 결과적으로 결승골이 된 PK를 내주는 역적이 되고 말았다. 결국 강등된 후 수많은 팀들의 러브콜을 받았고, [[에버튼 FC|에버튼]]으로 떠났다. 프리미어리그에서의 두 번의 강등 모두 최종전에서 업셋에 의한 잔인한 강등이었고, 두 번 모두 다시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오기까지 각각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. 이후에도 2008/09 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[[번리 FC|번리]]에 패하는 바람에 EPL 복귀가 무산이 된 시즌을 제외하면 챔피언십 리그에서도 항상 부진만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2011년에는 23위에 그치며 23년 만에 [[EFL 리그 원]]으로까지 추락하고 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